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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사적 제 10호)은 서울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조선의 성곽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6년 경복궁과 종묘를 지은 뒤 궁궐과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서울을 둘러싸는 길이 약 18.6㎞, 높이 5~8m의 도성을 쌓았다. 한양도성에는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 등 4대문과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등 4소문을 두었다. 공식 명칭은 한양도성이지만 서울성곽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는 첫째로 동아시아 도성의 조영(造營)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도시유산이다. 도성은 궁궐, 종묘와 함께 동아시아 도읍의 필수 구성요소다. 한양도성은 고구려 평양성과 개경성의 도성으로서의 위상과 형식을 계승한 유산으로 1396년 처음 축조된 이후 600년 동안 도성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랜기간 도성(수도의 성곽) 기능을 해 온 도시유산이다. 둘째로 500년에 걸쳐 축성기술의 발달 단계를 잘 보여주는 성곽이다. 고구려의 평지성과 산지성의 축성 기술과 형식을 계승한 성곽유산이다. 각종 사료와 각자성석, 유산 그 자체를 통해 조선시대 시기별 축성 기술(태조, 세종, 숙종, 정조 등)이 잘 나타난다. 한양도성 성문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성문 이름 등에 유교 이념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이 잘 드러나 있다. 세째로 자연존중의 고유한 축성원칙과 기술, 백성들의 힘으로 만든 유산이다. 한양도성은 자연지형과 지세에 따라 다른 축성술을 적용하여 만들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바깥 쪽에는 성곽을 쌓고 안쪽에는 판축방식으로 흙으로 성토하여 쌓았다. 무엇보다 전국 백성들의 공역으로 쌓고 지켜 온 민족 유산이다. 성곽의 축성과정을 기록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지역별 책임구간이 표시돼 있다.
한양도성(사적 제 10호)은 서울 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조선의 성곽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396년 경복궁과 종묘를 지은 뒤 궁궐과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서울을 둘러싸는 길이 약 18.6㎞, 높이 5~8m의 도성을 쌓았다. 한양도성에는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 등 4대문과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등 4소문을 두었다. 공식 명칭은 한양도성이지만 서울성곽으로도 불린다. 한양도성의 역사적 가치는 첫째로 동아시아 도성의 조영(造營)형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도시유산이다. 도성은 궁궐, 종묘와 함께 동아시아 도읍의 필수 구성요소다. 한양도성은 고구려 평양성과 개경성의 도성으로서의 위상과 형식을 계승한 유산으로 1396년 처음 축조된 이후 600년 동안 도성기능을 수행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오랜기간 도성(수도의 성곽) 기능을 해 온 도시유산이다. 둘째로 500년에 걸쳐 축성기술의 발달 단계를 잘 보여주는 성곽이다. 고구려의 평지성과 산지성의 축성 기술과 형식을 계승한 성곽유산이다. 각종 사료와 각자성석, 유산 그 자체를 통해 조선시대 시기별 축성 기술(태조, 세종, 숙종, 정조 등)이 잘 나타난다. 한양도성 성문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성문 이름 등에 유교 이념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이 잘 드러나 있다. 세째로 자연존중의 고유한 축성원칙과 기술, 백성들의 힘으로 만든 유산이다. 한양도성은 자연지형과 지세에 따라 다른 축성술을 적용하여 만들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바깥 쪽에는 성곽을 쌓고 안쪽에는 판축방식으로 흙으로 성토하여 쌓았다. 무엇보다 전국 백성들의 공역으로 쌓고 지켜 온 민족 유산이다. 성곽의 축성과정을 기록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지역별 책임구간이 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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