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언덕 위에 있는 명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본산이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892년 착공해 1898년 완공됐다.
고의선 신부가 설계한 명동성당은 19세기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딕식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의 길이는 69m, 너비는 28m, 지붕 높이는 23m다. 종탑 높이는 46.7m다. 연면적은 1668㎡에 달한다.
지금은 빌딩 숲에 둘러쌓여 있지만 건립 당시에는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었다. 처음 명칭은 종현성당이었으나 1945년 해방 이후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명동성당은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됐다.
명동성당은 1970~1980년대 격동기에 민주화운동의 성지다. 가톨릭은 한국 인권운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명동성당에서는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됐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농성단의 은신처로 역할을 했다.
서울 명동 언덕 위에 있는 명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본산이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892년 착공해 1898년 완공됐다.
고의선 신부가 설계한 명동성당은 19세기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딕식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의 길이는 69m, 너비는 28m, 지붕 높이는 23m다. 종탑 높이는 46.7m다. 연면적은 1668㎡에 달한다.
지금은 빌딩 숲에 둘러쌓여 있지만 건립 당시에는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었다. 처음 명칭은 종현성당이었으나 1945년 해방 이후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명동성당은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됐다.
명동성당은 1970~1980년대 격동기에 민주화운동의 성지다. 가톨릭은 한국 인권운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명동성당에서는 1976년 3.1 민주 구국선언이 발표됐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농성단의 은신처로 역할을 했다.